한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쓸 수 없었다.
매일이 비슷했고, 특별히 기록할 만한 일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하고, 치우고, 또 밥을 하고, 다시 치우고.
그렇게 삼시세끼를 챙기다 보면 하루는 생각보다 빠르게, 그리고 무심하게 지나가버린다.
예전에는 ‘이렇게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건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평범함이 오히려 나를 가만히 눌러앉히는 느낌이 든다.
어디에도 가지 않고, 누구도 만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은 편한데 마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무기력이라는 감정이 스며드는 걸 느낀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건 단순히 반복되는 일상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지금 내가 가장 힘든 이유는
‘기다림’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가까운 사람이다.
시험관 시술을 시작했다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병원에 가고,
수치와 결과를 확인하고,
몸에 직접적인 변화를 느끼면서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확신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달은 자연임신을 시도하기로 했다.
해야 할 건 다 했고,
이제는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길고, 깊고, 무겁다.
지난 3월 6일, 생리를 시작했고
배란유도제 페마라정을 5일간 복용했다.
3월 16일에는 초음파로 난포가 거의 성숙된 상태라는 걸 확인했다.
그때는 희망이 있었다.
‘이번에는 될 수도 있겠다’는
작고 조심스러운 기대.
의사 선생님은 4월 2일이면 임신 테스트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4월 3일 아침, 첫 소변으로 테스트를 했다.
결과는
아주 선명한, 단호한 한 줄.
그 한 줄은 참 담백하다.
설명도 없고, 여지도 없다.
그냥 “아니다”라고 말해준다.


그날 이후로
내 몸은 또 다른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아랫배가 콕콕 쑤시고
가슴이 예민해지고
묘하게 몸이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이게 임신 초기 증상인지,
아니면 생리 전 증후군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태.
희망을 가져도 되는 건지,
아니면 미리 마음을 내려놔야 하는 건지
계속해서 헷갈린다.
그렇게 또 3일이 지났다.
아직도 아무 소식이 없다.
차라리 생리가 시작되면 좋겠다.
그러면 바로 병원에 가서
2일차부터 시험관 시술 준비를 시작할 수 있으니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지금은 그저
애매한 시간 속에 멈춰 있는 느낌이다.
2월에도 배란유도제를 먹고
34일 만에 생리를 했었다.
그래서 오늘이 31일차인 지금,
아마 일주일 안에는 생리가 시작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으면
다시 임신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희망을 완전히 놓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꽉 쥐고 있지도 못한 채
그 사이 어딘가에서
계속 흔들리고 있다.

어제는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다.
벚꽃이 한창인 시기,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나가는 것도 싫어졌고
괜히 사람 만나는 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점점 나 자신이
사람을 피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한 달 전에 잡아둔 약속이라
그냥 나갔는데,
막상 나가보니
내가 제일 신나 있었다.
웃고, 이야기하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그때 느꼈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살아난다는 걸.
에너지는 혼자서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주고받는 거라는 걸.


오늘은 비가 왔다.
비 오는 날은 원래도 기분이 가라앉는데
요즘 같은 상태에서는
더 깊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문득 티비에서 봤던
의정부 제일시장이 떠올랐다.
집에서 30분 거리.
크고 좋다는 말만 기억나서
그냥 가보기로 했다.
시장 안은 생각보다 활기찼다.
사람들이 오가고,
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음식 냄새가 섞여 있는 그 공간이
묘하게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그 속을 천천히 걸으면서
오랜만에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떡볶이를 먹었다.
별거 아닌데
이상하게 맛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안 났다.
그냥 따뜻했고,
그냥 괜찮았다.



그러다 우연히
종묘상사를 발견했다.
원래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그날은 멈춰 섰다.
바질 모종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식용꽃 씨앗.
봄이 되면
집 앞 화단을 한번 꾸며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걸 이제야 떠올린 것이다.
비싼 꽃은 부담스럽고,
요즘 요리 기록하는 재미가 생겨서
식용꽃과 바질이 더 끌렸다.
근처 다이소에서
화분과 흙을 사고
‘만원의 행복’으로 준비를 마쳤다.
집에 돌아와
깔망을 깔고
마사토를 넣고
상토를 채우고
조심스럽게 옮겨 심었다.
꽃씨는 바로 땅에 심으면
정착이 잘 안된다고 해서
상토를 따로 준비했다.



흙을 만지고
손에 흙이 묻고
물기를 머금은 흙 냄새가 올라오는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리고
비가 그치고
해가 났다.
그 타이밍이
너무 묘했다.
화분을 다 정리하고 나니까
하늘이 맑아졌다.
내 기분도 같이 맑아진 느낌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봄에
어딘가에서 싹이 트듯이
내 안에서도
무언가가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일까.
이 작은 화분이
괜히 더 소중해졌다.
그저 식물이 아니라
어떤 상징처럼 느껴진다.
생명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물을 주고,
햇빛을 받게 해주고,
환경을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언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싹을 틔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기다려야 하고,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그래서 더 간절해진다.
그 예측할 수 없음 속에서
오히려
더 큰 경이로움이 만들어진다.

어쩌면
지금의 나도
그 과정 안에 있는 걸지도 모른다.
아직은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조용히, 아주 천천히
무언가가 준비되고 있는 시간.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덜 불안하고,
조금 덜 조급해지기로 했다.
그저
물을 주듯,
햇빛을 기다리듯,
내 시간도
그렇게 지나가도록
가만히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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