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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준비 일기

성형외과에서 보낸 1년, 그리고 내가 일을 멈추기로 한 이유

by 피치둥둥 2026. 1. 11.

매일 출퇴근길에서 봤던 백화점의 화려한 불빛

성형외과에서 일한 시간은 1년을 조금 넘겼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최근, 그 시간을 조용히 마무리했다.

이 글은 퇴사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글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무엇을 말해주기 위한 글도 아니다.
다만 이 시기의 나를, 이 시간을
흐려지기 전에 기록해두고 싶어 쓴 글이다.


 

나는 늘 새로운 일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돌아보면, 나는 한 가지 길만 오래 걸어온 사람은 아니었다.

중국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하고

아이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일도 해보고

MD로 중국에서 상품 컨텍하고 영업하는 일도 해보고

사진 찍고 디자인 일을 하며 전혀 다른 감각의 세계를 배우기도 했다.

그때마다 선택의 이유는 단순했다.
그 시점의 나에게 필요해 보였고,
한번쯤은 직접 부딪혀 보고 싶었다.

작년,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선택을 했다.

중국어 통역 코디네이터로 성형외과에서 일하는 것.

사실은 전에 있는 직장을 퇴사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성형외과에서의 시간

처음 출근하던 날의 공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의료 현장 특유의 긴장감,
빠르게 오가는 말들,
익숙하지 않는 구두와 몸에 붙는 유니폼.

나는 중국어 통역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곧 일본어 통역도 맡게 되었다.

면접 때
“생활 일본어는 가능합니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대학까지 일본어를 배운 이후
오랫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터라
내심 걱정이 컸다.

그런데 원장님은
내 실력보다 나를 먼저 믿어주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나를 한 걸음 앞으로 밀어주었다.

처음에는 실수도 많았다.
단어가 막히고, 문장이 어색해지고,
집에 돌아와 혼자 다시 정리하며 고개를 떨군 날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쌓일수록
말이 조금씩 자연스러워졌다.

몇 달이 지나자
일본인 환자 앞에 서는 일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었다.


성형외과에서 일하며 얻은 것 중
내게 가장 큰 소득은
일본어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언어는 쓰지 않으면 금방 멀어진다.
나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시 붙잡을 용기를 낸 건
이곳에서의 경험 덕분이었다.

그 결과,
JPT 시험에서 800점대 점수를 받았고
지난달에는 JLPT 1급 시험도 치렀다.
지금은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다시 일본어를 내 언어로 느끼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간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일을 멈추기로 한 이유

시간이 지나며
나는 조용히 나 자신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이 일을 오래 하고 있는 나를, 나는 그려볼 수 있을까.

성형외과는
외모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공간이다.
환자의 외모를 바라보고,
변화를 이야기하고,
때로는 그 기준이
그 공간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확장된다.

나는 외모나 유행에 큰 비중을 두고 살아온 사람은 아니다.
편안함과 단정함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왔다.

그 차이는
어느 순간부터
작지만 분명한 피로로 쌓여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나에게는
일보다 먼저 마주해야 할 인생의 과제가 있었다.

결혼한 지 10년,
아직 아이는 없다.

공부는 나중에도 할 수 있고,
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잠시 멈추기로 했다.
도망이 아니라,
순서를 바꾸는 선택으로.


쉼이라는 선택

한국에 온 지도 어느덧 15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해왔다.

이제는
잠깐 멈춰서
지금까지의 나를 정리하고,
다음 장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성형외과에서 보낸 1년은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일에 대한 경험뿐 아니라,
잊고 있던 언어를 되찾았고,
나 자신에 대해 더 분명해졌다.

지금은 일을 내려놓았지만,
이 시간이 헛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멈춤이
내 다음 선택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거라고
조용히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