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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준비 일기

2월, 난임 극복을 위한 본격적인 시작

by 피치둥둥 2026. 2. 13.

임신 준비를 위해 나는 일을 잠시 멈추기로 했다.
애매하게 병원을 다니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핑계 없이, 전력을 다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선택의 문제였다.

나는 고양시 덕양구에 살고 있지만
막상 난임이나 산부인과 전문병원은 대부분 일산동구에 몰려 있다.
거리로만 보면 비슷하지만
마음으로는 꽤 먼 선택처럼 느껴졌다.

허유재병원.

예전부터 교회 동생들이 이곳에서 출산을 많이 했고
일산에서 2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병원이라는 점이 묘하게 신뢰로 다가왔다.
게다가 몇 년 전 차병원이 생긴 이후
대부분의 산모들이 차병원으로 몰려
허유재는 상대적으로 대기가 적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줄 서는 걸 싫어한다.
맛집도, 병원도 마찬가지다.

맘카페를 뒤져보니 예상대로
차병원은 예약을 해도 기본 대기 한 시간이라는 댓글이 가득했고
결국 나는 허유재로 마음을 굳혔다.


첫 방문, 그리고 기대

1월 17일.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난임 상담을 받고 싶었지만
검사는 생리 2~3일 차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방문 당일은 생리 기간이 아니었고
결국 예약만 하고 돌아왔다.

미래새싹센터에는 남자 과장님, 여자 과장님이 계셨는데
나는 망설임 없이 남자 과장님을 선택했다.

솔직히 말하면 단순한 이유였다.

홈페이지 사진 속 선생님이
어딘가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양석형 교수님을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조금 귀엽고, 조금 순한 인상.

그때는 그저 가벼운 웃음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미 마음속에서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2월 1일, 신호탄

2월 1일.
기다리던 생리가 시작됐다.

다음 날 아침, 병원에 전화를 걸었고
2월 3일 피검사 일정이 잡혔다.

처음 선생님을 대면하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괜히 긴장해서 괜히 두근거리던 마음.
그런데 사진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젊은 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조곤조곤, 담담하게
검사 과정과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해 주셨다.

과한 위로도, 불필요한 희망도 없이
딱 필요한 이야기만 정확하게.

차갑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래서 더 편안했던 진료.

진료가 끝난 뒤 5층으로 올라가 피검사를 하고
남편의 정액검사 일정까지 예약했다.

이제 정말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팔관 조영술, 그리고 기억의 벽

2월 11일.

나는 남편보다 한 시간 먼저 병원에 도착했다.
평일 예약제 병원답게 단 1분도 기다리지 않고
모든 과정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초음파 화면 속 난포들을 바라보며
나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아… 다낭성이구나.’

그중 가장 큰 난포 하나를 조심스럽게 재던 선생님 손길.
2cm가 되지 못한 숫자.

초음파를 마치고 진통주사를 맞고
30분 뒤 영상의학과로 이동했다.

사실 이 검사는 나에게 작은 트라우마였다.
몇 년 전의 기억이 몸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차분한 안내, 나즈막한 목소리, 익숙한 얼굴.
그리고 무엇보다

시술을 위해 수술복을 입고 직접 들어오신 담당 과장님.

그 순간 긴장이 눈에 띄게 풀렸다.

소독하겠습니다.
기구 들어갑니다.

모든 절차가 조용히 흘러갔고
10분도 채 되지 않아 검사는 끝났다.

잠깐의 통증은 있었다.
생리통을 10이라 하면… 11 정도의 고통.

하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견딜 수 있는 정도의 두려움이었다.


이 병원이 주는 느낌

예전에 다녔던 병원은
상담, 진료, 시술이 철저히 분업화되어 있었다.

전문적이었지만
어딘가 기계적인 느낌도 있었던 기억.

반면 허유재는 조금 달랐다.

상담부터 진료, 조영술 시술까지
모든 과정을 같은 선생님이 함께해 주셨다.

개인병원 같은 따뜻함.
물론 좋은 의미에서.

그래서였을까.
그날의 검사는 이상하리만큼 편안하게 느껴졌다.


결과, 그리고 현실

오후 5시.

남편과 함께 검사 결과를 들었다.

예상대로 나는 다낭성난소증후군 소견.
남편은 정자의 수량과 질 모두 평균 이하.

자연임신은 쉽지 않다는 판단.

그리고 추가로 마주한 건강의 문제들.

비타민 D 부족, 항체 주사, 혈당 수치,
갑상선, 혈압…

아이를 준비하다가
우리 몸의 상태를 먼저 들여다보게 된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 시간 자체가 이미 필요한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방향을 정하다

처음에는 인공수정을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수치를 종합한 선생님의 결론은
시험관 시술 권유.

난임 진단서를 받아 들고 나오던 길.

조금 무겁고
조금 조용했던 우리.

결국 우리는 이렇게 결정했다.

3월 한 달, 몸을 돌보기.
잘 먹고, 잘 자고, 운동하기.

그리고 4월, 시험관 시작.

남편도 휴직을 결정했고
우리 둘 다 잠시 속도를 늦추기로 했다.


작은 안도

이번 진료에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건 따로 있었다.

배란유도주사 대신
약부터 시작하자는 선생님의 선택.

예전에 경험했던 불편한 기억들과 달리
조심스럽고 단계적인 접근.

과잉진료 같지 않았던 안도감.

2월의 페마라정.
그리고 조금 늘어난 용량.

아직은 약으로 지켜보는 단계.


2월은
희망보다는 현실을 많이 들은 달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던 시간이었다.

아마도 우리는 이제
막연한 기대 대신

구체적인 길 위에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천천히.
그래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