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에 도착한 날은 3월 23일이었다.
아직 공기가 차가웠고, 여행 첫날 특유의 설렘이 섞여 있었다.
이번 숙소는 내가 고른 곳이 아니었다.
남편이 예전에 스키 여행을 왔을 때 묵었던 호텔이라며
“여기 괜찮았어”라고 했던 그 한마디로 정해진 곳이었다.
그때는 그냥 믿고 예약한 정도였는데,
며칠 지내고 나니 왜 다시 오고 싶다고 했는지
조금씩 이해가 됐다.
스스키노 쪽에도 호텔은 많지만,
우리는 조금 더 조용한 분위기를 원해서 삿포로역 근처로 선택했다.
이 호텔은 삿포로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라
이동하기 편하면서도,
스스키노처럼 번잡하지 않아서 더 좋았다.
밤이 되면 주변이 한결 차분해져서
하루를 정리하기에도 더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이 호텔은 화려하기보다는
조용히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우드톤 인테리어에 간접조명,
필요한 것만 깔끔하게 놓여 있는 공간.
그리고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훨씬 넓어서 둘이 자도 여유가 있었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들어오면
그냥 몸을 맡기기만 해도 되는 느낌이었다.
베개도 두 개가 놓여 있었는데
하나는 단단하고 높은 타입,
다른 하나는 낮고 푹신한 타입이었다.
그날 컨디션에 따라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되는 게 좋았다.
이런 작은 디테일이 은근히 기억에 남는다.

삿포로의 공기는 예상보다 훨씬 건조했다.
하루만 지나도 목이 마르고 피부가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객실에 있던 공기청정기를 켰다가
가습 기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날 이후로는 매일 밤 틀어두고 잤다.
켜고 자는 날과 아닌 날의 차이가 분명해서
이건 선택이 아니라 거의 필수에 가까웠다.


아침에는 커피머신을 몇 번 사용했다.
여행 중의 아침은 늘 조금 느리게 시작되는데
방 안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이 꽤 좋았다.
책상 옆에는 충전 케이블도 하나 놓여 있었다.
5핀, 8핀, C타입이 하나로 묶여 있는 형태라
따로 챙겨오지 않아도 되는 점이 편했다.


욕실 선반에는 어메니티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칫솔, 면도기 같은 기본적인 것들뿐 아니라
샴푸, 린스, 바디워시까지 전부 개별 포장이었다.
보통은 큰 통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전부 일회용이라 조금 의외였다.
텀블러 사용을 권장하면서
환경을 생각하는 흐름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메니티는 전부 일회용이라는 점이
조금은 모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위생이나 브랜드 이미지 때문일 거다.
누군가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것보다
완전히 새 제품이라는 느낌을 주는 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객실에는 생수 대신 텀블러가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물이 없나 싶었는데
각 층마다 정수기와 제빙기가 따로 있는 공간이 있었다.
텀블러에 물을 담아 마시는 방식이었고,
며칠 지나니까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러워졌다.

우리가 도착한 날이 3월 23일이었는데,
마침 그날부터 레스토랑과 라운지가 공사 기간에 들어간 상태였다.
공사 기간은
3월 23일부터 4월 23일까지.
그래서 조식은 이용할 수 없었고
라운지도 운영되지 않았다.
대신 오후 3시부터 밤 11시까지
레스토랑 앞에 커피 머신을 따로 준비해두고 있었다.
조식을 기대했다면 조금 아쉬웠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큰 불편은 없었다.

이 호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객실보다도 2층에 있는 대욕장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다.
일본 목욕 문화가 처음이라
비슷하다고 들어도 막상 들어가려니 낯설었다.
막상 들어가보면 구조는 비슷하다.
다 벗고 들어가고, 먼저 씻고,
그 다음에 탕에 몸을 담근다.
그런데 작은 차이가 있었다.
남편이 예전에 말해준 적이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작은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다니고,
탕에 들어갈 때는 그 수건을 머리에 올린다고.
그 말을 떠올리며 보니까
정말로 머리에 수건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대부분 일본 사람들이었다.
왜 그런지 보니
탕 안에 수건을 넣지 않기 위한 방식이었다.
물을 깨끗하게 유지하려는 의미도 있고,
둘 곳이 없으니 머리에 올려두는 거였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장면이었다.

객실 TV를 켜면
대욕장의 혼잡도를 확인할 수 있는 기능도 있었다.
지금 사람이 많은지, 여유가 있는지
실시간으로 표시가 되는데
우리가 봤을 때는 대부분 “조금 혼잡” 정도였다.
이걸 보고 시간대를 피해서 내려가니까
훨씬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대욕장 이용 시간은
오후 3시부터 새벽 1시까지,
그리고 아침 5시부터 10시까지였다.
여행 중에는 밤에 한 번,
그리고 아침에 한 번 이용하는 사람들도 꽤 있어 보였다.

이 호텔은 2층에 여러 공용 공간이 모여 있었다.
대욕장도 같은 층에 있었는데,
그 옆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듯
전자레인지와 자판기, 그리고 피트니스 공간이 있었다.
밤에 내려가 보면
조용한 복도 끝에 자판기 불빛만 켜져 있어서
괜히 일본 여행 온 느낌이 더 났다.
음료 종류도 생각보다 다양해서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가볍게 하나 뽑아서 올라오기 좋았다.
전자레인지도 같이 있어서
편의점에서 사 온 음식 데워 먹기에도 편했고,
여행 중에 이런 작은 편의가 은근히 크게 느껴졌다.
피트니스 공간은 크지는 않았지만
간단하게 몸을 풀거나
가볍게 운동하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누군가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공간인데,
며칠 지내다 보니
이런 곳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면서
이 호텔이 더 편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마지막 날도 기억에 남는다.
체크아웃을 하면서 프론트에 말을 하면
락커를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하나 준다.
그 카드를 가지고 2층으로 올라가면
셀프 락커룸에서 짐을 보관할 수 있다.
캐리어를 넣고 문을 잠그고 나오면
그날 하루를 훨씬 가볍게 보낼 수 있다.
우리는 짐을 맡겨두고 나갔다가
오후쯤 돌아와서 다시 찾았다.
짐을 찾고 나갈 때는
사용했던 카드를 수거함에 넣으면 끝이다.
과정이 단순해서 좋았고,
마지막 날까지 여행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 호텔은
딱히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그런데 며칠 지내다 보면
조금씩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편한 공간이 된다.
아마 그래서 남편도 다시 오고 싶다고 했던 것 같고,
나도 그 이유를 알게 된 것 같다.
여행 중에 잠깐 머무는 곳이 아니라
그 시간의 일부처럼 남는 공간이었다.
'일상 여행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Day4] 삿포로여행 동물원+시로이코이비토+징기스칸, 완벽 루트 공개 (2) | 2026.03.31 |
|---|---|
| [DAY 3] 3월말 비에이·후라노 당일치기 버스투어, 날씨가 다 했던 하루 (2) | 2026.03.30 |
| [DAY 2] 오타루 당일치기 여행 | 오르골당·스누피샵·삼각시장 먹방 후기 (0) | 2026.03.29 |
| [DAY 1] 3월말 삿포로 여행 첫날 후기 | 공항·호텔·야경 정리 (1) | 2026.03.28 |
| 라면과 김밥, 그리고 우리 인생의 봄을 기다리며 (0) | 2026.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