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 삿포로 여행 3일차.
여행이 중반을 지나면서 익숙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날은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둔 비에이·후라노 버스투어를 가는 날이었다.
아침 7시, 삿포로역에서 집합.
이른 시간이라 쉽지는 않았지만, 하루를 돌아보면 이 선택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우리가 이용한 건 유투어버스 한국어 가이드 투어였다.
가이드는 한국인 아저씨였는데 일본 여성과 결혼해 일본에 정착했다고 했다.
이동하는 동안 한일 문화 차이나 지역 이야기들을 계속 풀어주는데, 그 덕분에 긴 이동 시간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비에이 크리스마스트리
https://maps.google.com/?q=Christmas+Tree+No+Ki+Biei
비에이를 대표하는 풍경 중 하나인 크리스마스트리.
완만한 언덕 위에 홀로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전부인데, 그 단순함이 오히려 더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이 날은 특히 날씨가 완벽했다.
3월 말이면 보통 눈이 거의 녹아버린다고 하는데, 며칠 전 내린 눈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하늘은 맑았다.
눈, 햇빛, 그리고 시야 끝까지 보이는 산까지 모든 조건이 동시에 맞아떨어진 날이었다.
비수기라 사람도 거의 없어서, 그 풍경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이 평범한 나무가 유명해진 계기는 광고였다.
일본에서는 1970~80년대 자동차 광고 촬영지로 사용되면서 알려졌고,
이후 한국에서도 카드사 광고 “부자 되세요” 장면에 등장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처음에는 기능적인 이유로 존재하던 나무였지만,
지금은 그 단순한 모습 덕분에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상징적인 풍경이 되었다.
넓은 설원 위에 나무 한 그루만 남아 있는 모습은
화려하지 않아서 더 오래 바라보게 되는 풍경이었다.




탁신관 자작나무 숲
https://maps.google.com/?q=Takushinkan
탁신관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일본 사진작가 마에다 신조가 사랑했던 비에이의 풍경을 담아낸 공간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장소가 바로 이 자작나무 숲이다.
자작나무는 껍질이 하얗고 곧게 뻗어 있어서, 겨울 풍경과 특히 잘 어울린다.
눈 위에 서 있는 나무들이 반복되듯 이어지면서, 마치 패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화려함보다는 ‘정적인 아름다움’에 있다.
바람 소리와 눈 밟는 소리 외에는 거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간에서,
잠깐 서 있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 명소로 유명한 이유도 이해가 됐다.
어디서 찍어도 배경이 정리되어 있어서, 인물 사진도 풍경 사진도 모두 잘 나오는 곳이다.








비에이 마을과 점심
https://maps.google.com/?q=Biei+Station
11시쯤 비에이역에 도착했다.
이곳은 생각보다 훨씬 작고 아기자기한 마을이었다.
마치 작은 모형 도시 안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점심은 ‘차이’라는 작은 중식당에서 먹었다.
전날까지 계속 해산물을 먹어서인지 매운 음식이 간절했다.
마파두부와 탄탄멘, 소룡포를 주문했고 후식으로 아몬드두부까지 먹었다.
사장님이 혼자 운영하는 가게라 음식이 조금 느리게 나오지만, 맛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흰수염폭포
https://maps.google.com/?q=Shirahige+Waterfall
흰수염폭포는 일반적인 폭포와 조금 다르다.
위에서 물이 떨어지는 구조가 아니라, 절벽 중간에서 지하수가 솟아나오면서 여러 갈래로 흘러내린다.
그래서 물줄기가 흰 수염처럼 퍼져 보인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
이 폭포가 더 특별한 이유는 물의 색이다.
비에이 지역은 화산 지형이라 알루미늄 성분이 섞여 있는데, 이 때문에 물이 에메랄드빛을 띤다.
폭포 아래로 흐른 물은 ‘청의 호수(아오이이케)’로 이어진다.
여름에는 이 호수를 직접 볼 수 있는데, 물 색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겨울에는 눈에 덮여 있기 때문에 이번 투어 일정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 날은 날씨가 좋아서,
설산과 함께 보이는 폭포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물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이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후라노 리조트와 우유
후라노에서는 리조트에 잠깐 들렀다.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들른 곳이었는데, 바로 위층에 기념품 판매샵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됐다.
그곳에서 녹차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었다.
그리고 남편은 후라노 우유를 하나 골랐다.
남편은 예전에 이곳 스키장에서 스키를 탔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리조트에 묵으면서 아침, 저녁마다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우유를 마셨는데,
너무 맛있어서 매일 꼭 한 번은 마셨다고 했다.
나도 한 모금 마셔봤는데,
단순히 고소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막 짜낸 것 같은 신선함과 진한 풍미, 그리고 입안에 남는 묵직한 느낌까지.
한국에서 마시던 우유보다 훨씬 더 진하고,
어떻게 보면 약간 기름지다고 느껴질 정도로 농도가 깊었다.


닝구루테라스
https://maps.google.com/?q=Ningle+Terrace
닝구루테라스는 숲 속에 작은 나무 오두막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홋카이도 전설에 등장하는 ‘닝구루’라는 요정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남편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줬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닝구루테라스’가 아니라
‘닌겐테라스(인간테라스)’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간 날은 비수기였는데도
각국에서 온 관광버스가 7~8대 정도 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숲 속에 조용히 자리 잡은 작은 상점들과 나무 길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카페와 야키밀크
닝구루테라스 안 카페에서 야키밀크와 커피를 주문했다.
야키밀크는 우유 위에 크림과 설탕을 올리고 토치로 살짝 그을린 음료다.
첫 입은 굉장히 고소하고 부드럽다.
하지만 계속 마시다 보면 점점 묵직해진다.
우유 자체가 진한데 크림까지 더해져서,
고소함이 극대화된 대신 금방 느끼해질 수 있는 맛이다.
그래서 커피와 함께 마시는 게 훨씬 균형이 좋았다.



스스키노, 스프카레 가라쿠
https://maps.google.com/?q=Soup+Curry+Garaku
스스키노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향한 곳은 스프카레 가라쿠였다.
이미 줄이 서 있었지만 회전이 빨라 15분 정도 기다린 뒤 들어갈 수 있었다.


가라쿠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밥이었다.
일반 흰쌀밥이 아니라, 강황가루를 넣은 듯한 노란색 밥이 나왔다.
보기에도 색감이 뚜렷해서 스프카레랑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구운 치즈를 추가해서 주문했다.
이건 확실히 취향이 갈릴 수 있는 포인트였다.
남편은 치즈를 추가한 쪽이 더 좋다고 했다.
치즈가 녹으면서 전체적으로 부드러워지고, 풍미가 더 깊어진다고 느꼈다고 한다.
반면 나는 치즈 없는 기본이 더 좋았다.스프 자체가 워낙 진하고 칼칼해서, 그 본연의 맛을 그대로 느끼는 쪽이 더 잘 맞았다.
먹는 방법도 나름의 포인트가 있었다.
밥에 레몬을 살짝 뿌린 다음, 스프에 적셔 먹으면
상큼함이 더해지면서 전체 맛이 훨씬 깔끔하게 정리된다.
이 조합은 확실히 추천할 만했다.

그리고 의외로 인상 깊었던 건 브로콜리였다.
튀긴 브로콜리가 올라가는데, 겉이 살짝 탔다고 느껴질 정도로 바삭하게 튀겨져 있다.
처음엔 너무 센 거 아닌가 싶었는데, 먹어보니 오히려 그 식감과 고소함이 살아 있어서
이건 따로 추가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맵기는 5단계까지 무료로 선택할 수 있었다.
5단계가 대략 신라면 정도의 맵기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딱 좋았다.
오히려 일본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맵찔이인 나에게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좀 더 자극적인 매운맛을 원한다면 추가 비용을 내고 더 높은 단계로 올려도 괜찮을 것 같다.

주문도 편했다.
테이블마다 태블릿이 있고 한국어 메뉴가 지원돼서 어렵지 않게 고를 수 있었다.
혹시 옷에 튈까 걱정되면
“에아프론 오네가이 시마스”라고 말하면 앞치마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는
처음과 달리 대기 줄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시간대에 따라 웨이팅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그릇도 인상적이었다.
뚝배기처럼 뜨겁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온도를 유지해주는 그릇이라
먹는 동안 끝까지 따뜻하게 즐길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가라쿠는 단순히 유명한 맛집이 아니라,
왜 이 지역에서 스프카레가 하나의 음식 문화로 자리 잡았는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이 날은 단순히 관광지를 많이 본 하루가 아니었다.
날씨, 타이밍, 그리고 사람까지 모든 조건이 잘 맞아떨어진 하루였다.
여행은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보다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순간들이 쌓이면서 더 깊게 기억에 남는 것 같다.
👉 다음 글에서는
삿포로 시내여행 코스를 정리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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