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7일 여행의 마지막 날은 이상하게 더 부지런해진다.
곧 떠나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먹게 된다.
이번 삿포로 여행도 그랬다.
저녁 비행기라는 이유로, 마지막 날까지 욕심을 냈다.
아침은 삿포로역과 오도리역 사이에 있는 마쓰야에서 시작했다.
숙소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김가네 같은 느낌의 프랜차이즈지만, 일본식 가정식을 편하게 먹기에는 딱 좋은 곳이다.
📍 마쓰야
👉 https://maps.app.goo.gl/HZxqvbkogkcSXtTP6




입구에 키오스크가 있는데 한국어로 선택 가능해서 주문하기 편했다.
받은 식권을 데스크에 제출하고 번호표 보고 픽업하면 된다.
나는 연어정식에 토로로를 추가했다.
간 마를 갈아서 만든 토로로는 처음엔 낯설었다.
끈적한 식감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밥에 비벼 먹으니 이상하게 계속 손이 갔다.
남편은 후랑크소세지와 계란이 나오는 정식을 골랐는데,
담백하고 무난한 아침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에 어울리는, 부담 없는 한 끼였다.


식사를 마치고 8시 45분에 맞춰 아카렌가 내부로 들어갔다.
붉은 벽돌 건물로 유명한 구 홋카이도청.
겉모습만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부는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다.
📍 구 홋카이도청 아카렌가
👉 https://maps.app.goo.gl/5qvTz6Zy4KjXcYjE9
아카렌가는 삿포로를 대표하는 붉은 벽돌 건물로,
정식 이름은 ‘구 홋카이도청 본청사’다.
1888년에 지어진 이곳은 홋카이도 개척 시기의 중심 행정기관으로,
당시 역사와 흐름을 그대로 담고 있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외관은 일본보다는 서양 느낌이 강한데,
붉은 벽돌과 중앙 돔 구조가 특징이라 사진 명소로도 유명하다.
내부에 들어가면 홋카이도의 역사와 개척 과정,
아이누 문화 등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이어진다.
겉에서만 보고 지나가기엔 아쉬운 곳이라,
시간이 된다면 꼭 내부까지 들어가 보는 걸 추천한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기기 전, 마지막으로 편의점에 들렀다.
여행 내내 반복했던 작은 습관.
흑임자 푸딩, 계란 푸딩, 밀크 푸딩.
같은 푸딩이지만, 셋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흑임자 푸딩은 예상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숟가락을 넣으면 연두부처럼 스르르 무너지는 질감.
단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고소함이 입안에 길게 남는다.
디저트라기보다, 뭔가 건강한 간식을 먹는 느낌에 가까웠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 더 인상 깊었고, 가장 기억에 남았다.
계란 푸딩은 우리가 흔히 아는 정석에 가까웠다.
조금 더 묵직하고 끈적한 질감, 그리고 카스타드 크림 같은 진한 풍미.
바닥에 깔린 카라멜 소스를 꼭 섞어 먹어야 완성된다.
위에서부터 퍼먹을 때와, 카라멜을 섞었을 때의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
익숙하지만 그래서 더 안정적인 맛이었다.
밀크 푸딩은 계란 푸딩보다 한층 더 가볍고 산뜻했다.
우유 본연의 맛이 부드럽게 퍼지면서, 전체적으로 ‘프레시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 역시 카라멜 소스와 함께 섞어 먹어야 밸런스가 맞는다.
단순한데도 계속 먹게 되는 맛.
솔직히 계란 푸딩과 밀크 푸딩은 한국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맛이다.
그래서 더 비교가 되었고, 그 사이에서 흑임자 푸딩은 확실히 다르게 느껴졌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고민 없이 흑임자 푸딩을 먼저 집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아몬드 푸딩도 꼭 같이.
덜 달고, 질리지 않고,
이상하게 먹고 나면 기분까지 가벼워지는 디저트였다.



체크아웃 후 짐은 호텔 2층 락커에 맡기고, 걸어서 5분 거리인 홋카이도 대학으로 향했다.
홋카이도 대학은 단순히 ‘잠깐 들른 캠퍼스’ 이상의 공간이었다.
📍 홋카이도 대학
👉 https://maps.app.goo.gl/fZb3n3m6Ywqf9wXy8
1876년에 설립된 이곳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국립대학으로,
처음에는 ‘삿포로 농학교(Sapporo Agricultural College)’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당시 홋카이도는 아직 개척 단계였고, 이 대학은 농업과 과학을 기반으로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교육기관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캠퍼스 곳곳에서 ‘개척’과 ‘자연’이라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이 학교의 교육 철학이다.
초대 부총장이었던 윌리엄 S. 클라크 박사는
“Boys, be ambitious.”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 문장은 지금까지도 홋카이도 대학을 상징하는 문장으로 남아 있다.

캠퍼스를 걷다 보면, 단순히 예쁜 풍경을 넘어서
이곳이 어떤 시간들을 지나왔는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건물들도 그런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현대식 건물과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이 함께 섞여 있는데,
특히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유럽식 영향을 받은 디자인으로
삿포로라는 도시의 역사와도 연결되어 있다.
캠퍼스 안에 있는 홋카이도 대학 박물관도 인상적이었다.
이곳은 무료로 개방되어 있어서 부담 없이 들어갈 수 있는데,
홋카이도의 자연, 동물, 그리고 연구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단순한 전시관이라기보다,
이 지역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 공간에 가깝다.




입구에 있는 기부함에 동전을 넣으면 엽서를 하나 받을 수 있는데,
그 엽서를 들고 캠퍼스 곳곳에 있는 스탬프를 찍는 작은 이벤트도 있다.
큰 기대 없이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꽤 재미있다.
다만, 한 가지는 미리 알고 가는 게 좋다.
박물관 내부에는 인체 표본 전시가 포함되어 있는데,
꽤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놀랄 수 있다.
사진 촬영도 금지라서 더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전체적으로 홋카이도 대학은
‘관광지’라기보다는 ‘걸어보는 장소’에 가까웠다.
조용하고 넓은 길,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그리고 학생들이 일상처럼 오가는 풍경.
그 안을 천천히 걷다 보면,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잠깐 잊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더 좋았던 곳.



다시 호텔로 돌아와 짐을 찾고, 삿포로역으로 향했다.
마지막 일정은 역시 먹는 것과 쇼핑.
삿포로역 지하 아피아에 있는데, 다이마루 백화점 입구 바로 맞은편이라 찾기도 쉽다.
📍 사무라이 아피아점
👉https://maps.app.goo.gl/HF8AU79VSmb4YcN57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대기가 꽤 있었다.
외국인과 현지인이 섞여 있었고, 한국인 커플도 꽤 눈에 띄었다.
이미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집이라는 느낌.

맛은 이전에 먹었던 타이거와 가라쿠와 비교하면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사무라이는 국물이 조금 더 묽은 편이다.
토마토 베이스가 더 강하게 느껴져서 산미가 은은하게 올라온다.
전체적으로 가볍고 산뜻한 스타일.
이건 완전히 취향 차이인데,
꾸덕하고 진한 스프를 좋아하는 남편은 “가라쿠가 더 낫다”고 했다.
확실히 사무라이는 묵직함보다는 밸런스와 깔끔함 쪽에 가까운 맛이다.
그리고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그릇.
뚝배기가 아니라 일반 그릇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빨리 식는다.
스프카레는 따뜻함이 중요한데, 이 부분은 조금 아쉬웠다.

그런데 여기서 의외로 인상 깊었던 건 따로 있었다.
갈릭 브로콜리 튀김.
이건 꼭 시켜야 한다.
바삭하게 튀겨진 브로콜리에 갈릭 풍미가 입혀져 있는데,
밥과 따로 나와서 더 좋았다.
찍어 먹을 수도 있고, 스프에 넣어서 먹을 수도 있어서 선택지가 생긴다.
이전에 가라쿠에서는 브로콜리를 추가했더니
이미 스프에 적셔진 상태로 나와서 조금 축축했는데,
여기는 바삭함을 그대로 즐길 수 있어서 훨씬 만족스러웠다.
결론적으로,
진하고 꾸덕한 스프카레를 좋아한다면 가라쿠,
조금 더 가볍고 산뜻한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사무라이.
그리고 브로콜리는 무조건 추가 😏

그리고 다이마루 백화점 식품관을 둘러보다가, 키타카로의 C컵 푸딩을 발견했다.
📍 다이마루 삿포로점 (식품관)
👉 https://maps.app.goo.gl/9kV8bTgX2QmL7F4F7
푸딩 위에 카스테라, 그 위에 치즈크림.
처음엔 섞지 않고 층층이 떠먹다가, 마지막에 전부 섞어 먹었을 때의 그 맛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여행의 마지막에 어울리는, 조금은 과한 듯하지만 완벽했던 디저트였다.
설명서에는 비비면 비빌수록 맛있다고 되어 있지만 먼저 따로 먹고 같이 섞어 먹는거도 추천!


공항으로 이동해서는 작은 실수를 했다.
출국장 안에서 밥을 먹으려고 일부러 일찍 들어갔는데, 면세구역 식당 대부분이 문을 닫아 있었다.
결국 몇 안 되는 식당 중 하나에서 카츠동과 돼지고기 덮밥을 먹었고, 가격은 거의 5만원.
맛은 평범했다.
그 순간, 여행에서 처음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공항 안에서 먹지 말고, 꼭 시내에서 먹고 들어가야 한다.


저녁 6시 5분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
마지막 날까지 시간을 남김없이 써버린 여행.
조금 피곤했지만, 그만큼 만족스러웠다.
삿포로는
다시 와도, 또 같은 마음으로 걷게 될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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