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침부터 나를 깨웠다.
“기차 타러 가자.”
일영역에서 의정부까지 가는 교외선.
전부터 몇 번이나 말했던 그 기차 여행이었다.
나는 순간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며칠 전 난자채취를 하고 나서 몸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도 아니었고,
어제도 외출을 해서 그런지 몸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솔직히 그냥 더 자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은 이미 시간표를 손에 들고 있었다.
“지금 준비하면 10시 22분 기차 탈 수 있어.”
커튼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불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창밖의 맑은 날씨 사이에서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부터는 나도 일을 시작하면
이렇게 갑자기 떠나는 날이 점점 줄어들겠지.
그 생각이 들자, 몸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집에서 일영역까지는 차로 10분 남짓.
사실 의정부역까지 바로 가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굳이 일영역까지 가서 주차를 하고
기차를 타는 이유는 하나였다.
기차여행의 ‘느낌’.
교외선은 1960년대 개통된 노선으로
서울과 경기 북부를 잇던 철도였지만
오랜 시간 운행이 중단됐다가 최근 다시 일부 구간이 재개통된 곳이다.
그래서인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도 있고,
지금은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느린 이동’이기도 하니까.


일영역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더 작은 역이었다.
역무실 안쪽에서 발권을 해주고 있었고,
한쪽에는 의상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놓여 있어서
마치 작은 전시관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곳은 BTS의 ‘봄날’ 뮤직비디오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눈 덮인 플랫폼 위에서 멤버들이 서 있던 장면이 바로 이곳.
그 사실을 알고 보니
평범한 시골역 같던 공간이
조금 더 특별하게 보였다.






시간에 맞춰 기차가 들어왔다.
총 두 칸.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기차가 천천히 출발했다.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오히려 자동차보다 느리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 느림이 오히려 좋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나간다.
송추 계곡, 장흥 유원지,
푸르게 올라온 나무들이 가까이 다가왔다가 멀어진다.
송추역에서는 배낭을 멘 등산객들이 한꺼번에 내렸다.
북한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괜히 나도 어디론가 더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분 정도 지나 의정부역에 도착했다.
오늘의 첫 목적지는 순대국집.
의정부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골목 안쪽에 있는 곳이었다.
그냥 지나가면 절대 모를 위치.
남편이 최근 의정부에서 자격증 교육을 받으면서
강사들에게 추천받은 맛집이라고 했다.
그리고 알고 보니
성시경이 추천한 곳이라
평일 점심에는 웨이팅이 꽤 심하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는 토요일 11시쯤 도착해서
여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다.



국밥집은 김치를 보면 안다.
이 집 김치는
직접 담근 듯한 비주얼과 맛이었다.
겉절이도 아니고, 너무 익지도 않은
적당히 새콤하게 익은 상태.
순대국과 정말 잘 어울렸다.


순대는 조금 특이했다.
당근이 들어가 있고, 순대피가 두꺼운 편이라
식감이 꽤 쫄깃했다.
이걸 쫄깃하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도 국물은 정말 좋았다.
잡내 없이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
처음에는 그냥 먹다가
중간쯤 다대기와 들깨가루를 넣으니
맛이 한층 더 살아났다.
양도 꽤 많아서 결국 다 먹지 못했다.



밥을 먹었으니
자연스럽게 카페를 찾게 된다.
의정부제일시장 근처에서 찾은 카페, 루나브루.
조용하고 깔끔한 분위기였고
디저트가 정갈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다쿠아즈, 휘낭시에를 하나씩 주문했다.
달달한 디저트와 커피를 마시니
몸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바로 옆에 시장이 있어서
호떡을 찾으러 갔는데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이렇게 큰 시장인데 호떡이 없다니
괜히 더 아쉬웠다.
남편은 디저트로는 배가 덜 찼는지
조금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오후.
남편이 미리 찍어둔 시간표를 보고
1시 29분, 3시 4분 기차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3시 4분 기차를 타기로 했다.
여유 있게 역에 도착해서 발권을 하려는데
이상하게도 5시 기차밖에 선택이 되지 않았다.
몇 번을 다시 해봐도 같은 결과.
그 순간 공기가 살짝 무거워졌다.

날씨는 덥고,
아침에 추울까 봐 두껍게 입은 옷은 더 답답했고,
체력도 이미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순간 짜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어렵게 나온 날이었기에
이대로 기분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걸어서 15분 거리에
일영역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다.
가는 길에 즉석 로또도 하나 사고
억지로라도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했다.
그때 남편에게 말했다.
“시간표 사진 좀 보여줘.”
사진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이건…
일영역 기준 시간이었다.
일영역에서 3시 4분이면
의정부에서는 이미 2시 30분대에 출발했을 시간.
우리가 역에 도착하기 5분 전에
기차는 이미 떠난 뒤였다.

순간 감정이 올라왔다.
버스정류장에서 남편에게 괜히 화를 냈다.
그런데 곧 생각이 들었다.
확인 안 한 나도 잘못이지.
이미 지나간 일.
다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직행버스 있는 게 어디야.”

버스를 타고 30분.
다시 일영역으로 돌아왔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4시 반쯤.
집에 와서 대충 씻고 나니 갑자기 허기가 졌다.
냄비에 스팸이랑 소세지, 김치 넣고 푹 끓이다가
유통기한 임박한 라면 한봉지
마지막으로 파 숭덩숭덩 썰어 놓고
15분만에 완성한 부대찌개
마지막 한끼까지 의정부스러웠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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